'서툴음'의 미학
새벽 다섯시, 자명종 울림에 깨어 남편과 함께 밭으로 향했다.
비온 후라 훌쩍 자란 채소들에 입이 함지박만큼 벌어지고,
빠른 손놀림으로 수확에 들어갔다.
너무 욕심을 냈는지 뽑고 뜯고 따는 것도 한참이다.
여섯시 쯤 되니 이웃 교수님과 치과의사 분이 오고,
뒤이어 팔순 가까운 허리 휜 할아버지도 오셨다.
할아버지가 자신의 밭으로 가기 전에 우리쪽을 들러보더니
한마디 하신다.
"고추는 장마 지면 다 물에 잠겨. 고랑을 내주어야지"
"열무를 왜그냥 놔두었어. 솎아줘야 잘 자라지"
"누가 내 삽 가져다 쓰고 분질러놨어. 그러면 사다놔야지. 사람들이 그러면 쓰나."
.
.
.
오십대 교수님도 치과의사님도 허리를 굽히며
예, 알겠습니다. 깍듯한 인사를 건넨다.
순간 아하! 하며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평소 대학생들에게 기계공학의 정밀한 지식들을 강의하셨을 교수님,
환자들에게 이런저런 상담과 잔소리를 하셨을 치과의사님도
그 순간 농사에는 문외한인 죄(?)로 혼을 나신 것이다.
누구에게나 자기 분량의 달란트가 있구나.
어느 분야에서 대가라 해도
서툰일이 있게 마련이고,
평범하다 못해 초라해보이는 노인에게서도
배울 진리가 있는 거구나.
무엇 하나 변변히 내세울 것 없는 내 서툴음이
그 순간 따듯한 위로를 받은 듯했다.
서툰 것 하나 없는 완벽한 사람.
생각만 해도 정이 안간다.
역시 사람은 서로 부족한 부분과 넘치는 부분이
맞물리면서 하나되어 살아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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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렁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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