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
나의 외할머니를 생각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말이 ‘재다’ 이다.
‘잰 걸음’ ‘잰 행동’ 빠르고 날렵한 뜻을 가진 동사로 먼저 기억이 된다.
시 외할머니님께서 며칠 전 별세 하셨다.
위독하신 할머님 병세 소식을 듣고 마음 애 닮아 하실 어머님 걱정되어
시댁에 전화를 하니 어머님은 “응 그래 슬프네 ‘ 하시면서도 이전 보다
더 생기있는 목소리로 답변을 하곤 하셨다.
늘 집에만 계시는 어머님이 할머님 위독을 핑계로 친정식구들을 만나고
병원을 드나드시면서 바쁜 공식 움직임이 활기를 주신 듯 했다.
몇 주 뒤 시 외할머님의 운명 소식을 들었다.
멀리 있으니 가보지도 못하고 그저 장례식 풍경을 남편 통해 들으면서
호상이 주는 경건한 축제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러다. 문득 6년 전 돌아 가신 나의 외할머니 생각이 난다.
딱 이 맘 때 할머닌 늘 기도 하시던 대로 병상에서 보름을 넘지 않으시고
2주 만에 숨을 거두셨다.
나의 외할머니는 작은 체구에 날렵한 몸매를 가지셨다.
새벽부터 인근에 모두 모여 사는 딸들 집 ( 엄마 그리고 이모 둘)과
손주 손녀 집들을 순찰 하시곤 하셨다.
가깝게는 앞집에서 멀어도 10여분이면 가능한 거리에 모두 모여 살았으니
동네 입구에서 외가 친척이나 식구를 만나는 일은 흔한 일 이였다.
친정 앞 골목 신호등 정지선에 걸려 있다 보면 신호가 바뀌자마자 가장 앞장 서
씩씩하고 바쁘게 잰 걸음으로 걸어 가시는 분이 할머니 셨다.
차 문 열고 부르기 전에 할머니는 이미 저 만큼 걸어가시곤 했다.
친정에 들리면 할머니가 해 주시는 무말랭이나 장아찌 같은 밑반찬을 얻어 오곤 했다.
그 칼칼한 혀 끝 감각이 머리 속 할머니 모습 보다 먼저 생각이 나기도 한다.
할머니는 해가 지기 전 자리에 눕지를 않으셨다.
어쩌다 두루마리 휴지를 눕혀 베고는 깜빡 조시기도 하였는데
그때 베개를 살짝 가져다 대 드리면 벌떡 일어나서 ‘나 안 잘란다’하곤 자리를
박차고 일어 나셨다.
그 바지런하고 군더더기 없던 할머님의 모습이 선하다.
지금 계시지는 않지만 할머니는 언제나 마음 따뜻해 지는 마음의 고향이다.
생각만으로, 할머니를 추억하는 것 만으로 푸근하고 든든하다.
어릴 적 할머니 친목계 모임에 따라가서 먹던 자장면 맛과
맷돌에 갈아 만들어 주시던 녹두 빈대떡의 고소한 향내와
서울식으로 얌전하게 지으시던 꿀 가득 들은 송편의 맛과 함께 말이다.
친정 엄마는 7명의 손주, 손녀로부터 할머니 로 불린다.
그러나 나에게 보여지는 우리 엄마는 내 기억 속의 외 할머니와 참 다르다.
딸로서 멋있게 늙어 가는 엄마의 여유로운 모습이 보기 좋으면서 우리 아이가
내가 가진 것 같은 외할머니의 추억이 없는 건 아닐까 조심스러운 노파심이 생긴다.
한편으론 없는 것 없이 다 가지고 누리는 딸에게 ‘외 할머니’ 가 주는 호칭이상의
그 진득한 느낌을 나는 가지고 있음에 대해 한껏 힘을 주어 본다.
그러면 무엇 하겠는가.
딸을 비롯한 손주,손녀들은 용돈 넉넉히 주시고 세련된, 그리고 늘 편이 되어 주시는
할머니를 그들의 완벽한 할머니 모습으로 기억하며
“ 우리 할머니” “우리 할머니” 하며 추억을 만들어 간다.
딸이 자라 엄마가 되고 그리고 할머니가 된다.
꼿꼿하던 등이 휘고 다리에 힘도 빠지는,
그리고 마냥 퍼주고도 부족해 하며 안타까워 하는 할머니가 된다.
내가 그 이름을 가지게 되는 어느 날,
나는 '외 할머니'를 기억할 것이다.
자그마한 체구의 우리 외할머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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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니
박복남 
박복남
악기도 머리가 좋아야 잘 한다던데........ 
날씨가 풀렸다고 방심하고 있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