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인 이선학(27)씨는 올해 초 패밀리 레스토랑인 스카이락의 한 지점을 찾았다.
다양한 메뉴와 저렴한 가격이 마음에 들었지만 몇가지 문제점이 눈에 띄었다.
`음료수가 다 떨어지면 다시 종업원을 불러서 리필을 요구하는 게 불편하네.
3분의 1 정도 남으면 알아서 리필을 해줬으면 좋겠는데….'
`종업원들의 얼굴에 웃음이 없고 “실례합니다”라는 상투적인 말을 너무 자주 써.
좀 더 다양한 표현 방법이 있을텐데.'
`어? 창가쪽 벽이나 창틀에 먼지가 좀 있군. 잘 보이는 곳만 청소를 깨끗이 하고
이곳은 좀 소홀히 한 것 같아.'
스카이락을 찾을 때마다 속으로만 생각하던 문제점을 이씨는 스카이락 홈페이지에 조목조목
지적하는 글을 올렸다. 세세한 지적이어서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트집잡기로 보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씨는 뜻밖에도 스카이락으로부터 `고객이 바라본 스카이락'이라는 제목으로
직원들을 상대로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스카이락은 이씨의 생생한 불만을
직원들에게 전달해 고객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피부에 와닿게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씨가 제기한 불만은 최대한 수용해서 문제점을 고쳤다.
스테이크 전문 레스토랑인 빕스의 고객 이민영(23)씨도 비슷한 경우다.
홈페이지에 빕스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장문의 글을 올린 뒤 역시 강사로 초빙돼 직원들을 상대로
서비스에 대해 강의를 했다. 그는 이제 빕스의 각 매장을 돌아다니며 서비스 실태를 살펴보고
회사쪽에 개선점을 제안하는 열성고객이 됐다.
이처럼 `불만 많은 고객'을 바라보는 기업의 시각이 달라지고 있다.
`귀찮은 존재'에서 `우수고객'으로 바뀌는 것이다. 이는 불평을 터뜨리는 고객들이 근본적으로는
자사에 대한 친근감이나 애정이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등잔밑이 어둡다는 속담처럼,
직원이나 회사쪽은 미처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점에서 불만을 가진
고객들의 예리한 지적은 경영에 상당한 도움이 된다.
소비자들도 적극적인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다.
어떤 기업이나 제품에 불만이 있다면 “다시는 쳐다보지도 않는다”며 돌아서기보다는
타당성있는 따끔한 질책을 하는 게 좋다. 그런 고객을 이제 정신이 제대로 든 기업이라면
무시하지 않는다.
올바른 의견을 내면 상금이나 사은품을 받고 회사쪽으로부터 감사의 편지를 받을 수 있다.
●지적많은 고객 공장 초대
△ 패밀리 레스토랑인 스카이락의 메뉴평가단. 스카이락에 평소 불만을 제기했던 고객 등이
포함된 메뉴 평가단은 고객의 입장에서 스카이락 메뉴의 맛과 질 등에 대한 평가를 해주는
구실을 한다.
엘지생활건강은 해마다 두차례씩 불만 많은 고객을 불러다 사업장을 견학시켜 준다.
올해도 지난 6월 엘지생활건강에 대해 불만을 많이 한 고객 가운데 40여명을 선발해
대전 기술연구원과 청주 공장을 보여 줬다. 단지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다'고
설득하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다. 혹시 최종 생산품에서 고객의 불만으로 이어질 요인이 없는지
소비자의 눈으로 연구 및 생산과정을 미리 살펴보도록 하자는 취지도 있다.
고객들은 제품의 결함을 발견했을 때보다도, 자신의 불평을 기업들이 무시하거나 푸대접할 때
더욱 분노한다. 엘지생활건강은 이런 정서를 적극 경영에 반영한 것. 불평을 터뜨렸는데
뜻밖에도 회사쪽으로부터 융숭한 대접을 받게 된 고객들이 해당회사에 호의적으로 변하는 것은
물론이다.
●하루내 조처…전직원 숙지
현대백화점은 지난 7월 `고객의 의견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이 시스템은 각 매장, 고객상담실, 안내데스크, 소리함 등 각종 접객 창구에 접수되는
각종 불평·불만사항과 현대인터넷쇼핑몰 등에 올려진 의견 등 고객들의 모든 의견을 통합해
데이터베이스화한다.
매장 담당자들은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고객의 불평 및 의견을 실시간으로 파악해 늦어도
하루 안에 조처를 취할 수 있다.
무엇보다 불만 해결 방법을 데이터베이스화해 전 직원이 공유하고 숙지해 비슷한 사례가
40% 줄었다. 고객 각자의 불만 건수, 주요 불만사항, 상품 구매성향 등에 관한 사항까지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어, 불만고객에 대한 일 대 일 맞춤 서비스가 가능해졌다고 백화점쪽은
설명한다.
●매월 하루 `클레임 반성회'
“기본형 재킷이 얼마 입지도 않았는데 어깨솔 아래 박음선이 뜯어졌다는 불만이 있다.”
“소재가 약한 재킷이기 때문이니 전량 회수해서 강한 소재로 보완해서 다시 내놓는 것이 좋겠다.”
“고급 스웨터가 보풀이 잘 일어난다는 항의가 들어왔다.” “직물이 성기게 짜져서 문제가 발생했다.
앞으로 직물의 급수를 높여 옷감을 더 촘촘히 짜면 해결할 수 있다.”
베스띠벨리, 씨, 비키, 아이엔비유 등의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는 신원은 매달 마지막주 목요일
`클레임 반성회'를 열어 고객들의 불평이 나온 제품을 모아놓고 꼼꼼히 원인과 이유를 분석한다.
이 제도는 지난 1998년부터 시작됐다. 그 결과 98년 3월 420건이었던 클레임 발생건수가
시행 4년째인 요즘은 품목에 따라 10건 안팎으로 줄었다.
●기다리기 넘어 찾아다니기
국민은행은 아예 고객들의 불만을 찾아다닌다. 행원 가운데 컴퓨터와 인터넷에 능한 30명을
뽑아 만든 `사이버 인스펙터'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들은 국민은행 홈페이지뿐만 아니라,
각종 인터넷 사이트의 게시판 등을 뒤져 국민은행과 관련된 고객들의 불만이 없는지를 매일
검색한다. 고객이 터뜨리는 불만은 바로 해당 부서나 지점에 통보해 처리한다.
번뜩이는 고객들의 아이디어는 신상품 및 서비스 개발 등에 반영한다.
이 정도면 고객들의 불만을 찾아다니는 셈이다.
국민은행은 고객을 대상으로 상품관련 아이디어나 은행 경영 전반에 대하여 고객의 의견을
받는 `고객제안제도'를 운영중인데, 지난해에는 모두 30건을 채택해 우수제안상 1편에
상금 50만원, 장려상 2편에 30만원씩의 상금을 줬다.
[ 한겨레신문 2001 / 8/ 22 김태경 기자
gauzari@hani.co.kr ]
불만 많은 고객이 우수 고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