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 '주부 특공대' 떴어요
텔레비전 주말드라마 <그래도 사랑해>의 주인공 오순미 부장은 손잡이 하나, 미닫이 움직임 등
세심한 데까지 신경을 쓴 모델하우스를 선봬 하룻 만에 100% 아파트 분양 기록을 세운다.
소비자의 마음을 정확히 읽고 이를 충족시킨 `주부 마음 읽기'가 비결이다.
“주부 마음은 주부가 제일 잘 안다”는 `주부 마음 읽기'는 텔레비전 드라마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현실에서는 더욱 활발하다.
요즘 주택업체들은 주부들로 `고객서비스지원단' `어드바이저'(도우미) `주부평가단' 등을 구성해
소비자들의 욕구 충족에 발벗고 나서고 있다.
아이엠에프 이후 짓기만 하면 아파트가 팔리던 부동산시장의 신화가 무너지면서 아파트 소비
주체인 주부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업체들의 마케팅 전술은 날로 다양해지는 추세다.
이제 신규분양 아파트 모델하우스에서 날씬한 `미혼여성 도우미'보다는 노련한 `주부 도우미'를
발견하기가 훨씬 수월하다. 엘지건설의 김격수 홍보과장은 “얼마전까지만해도 모델하우스에서
미혼여성 도우미가 8대 2로 많았지만, 지금은 주부 도우미들이 6대 4로 역전됐다”면서
“일당도 주부 도우미가 10만원으로 2만원 더 많이 받는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서는 모델하우스 도우미뿐 아니라 하자보수, 재건축 아파트 수주전, 미분양 아파트 판매,
사전점검 등에 이르기까지 업체들의 `주부에 의한, 주부를 위한' 마케팅 전술은 끝없이 확대되고 있다.
삼성물산 주택부문의 주부 도우미인 `어드바이저'의 활동은 마치 특공대를 방불케 한다.
30대 후반에서 40대 중반의 주부 39명으로 구성된 어드바이저들은 평상시에는 미분양 아파트
판촉활동에 주력하지만, 주택업체의 사활이 걸린 재건축·개건축 수주전에 돌입하면 현장에 투입돼
회사 선전활동의 맨 앞에 선다.
또 서울지역 동시분양이나 수도권 분양시기가 닥치면 모델하우스에 파견돼 `미혼여성 도우미'가
할 수 없는 주방 동선 이나 수납공간, 세탁기 위치 선정 등 생활체험을 바탕으로 한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김현숙(45)씨 등 주부 어드바이저들은 비록 정식 사원이 아닌 계약직 신분이지만,
비중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이들이 지난해 판 미분양 아파트는 약 700여채로 값으로 환산하면 1700억원에 이른다.
삼성물산은 어드바이저 외에도 21세기 주택위원회라는 주부마케팅 조직도 운영한다.
삼성물산 주택부문 고재홍 과장은 “기존 아파트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주부모임 21세기 주택위원회를 꾸리고, 주부설계 공모전 등 다양한 주부 마케팅을 시도할 수
있었던 것은 어드바이저들이 낸 아이디어”라고 높이 평가했다. 이와 함께 “최근 서울 반포와
가락 한라아파트 재건축 수주를 잇따라 따낸 것 또한 어드바이저들의 힘이 컸다”고 덧붙였다.
어드바이저들도 자신들의 `힘'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입을 모은다. “주부들이라서 유리한 점이 많죠.
조합원들 집을 방문하기도 쉽고, 집 안에 들어가서도 다짜고짜 남자들처럼 사업 얘기부터
하는 게 아니라 아이들 교육 등 사적인 얘기부터 꺼내니까 말문트기가 훨씬 수월하죠.”
지난달 경기도 안산 고잔 5차 대우아파트 1113가구를 99% 이상 계약한 대우건설은 분양성공
요인의 하나로 30∼40대 주부 26명로 구성된 모니터 요원들의 활약을 꼽았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분양을 앞두고 고용된 이들은 안산시내 가가호호를 방문해 판촉활동을
펼쳐 소비자들이 모델하우스를 찾도록 하는 데 큰 덕을 봤다”고 말했다.
주부들의 꼼꼼함은 아파트 입주를 전후해서도 발휘된다.
설계, 설비, 시공 등의 분야에서 7∼10년의 현장경험을 갖고 있는 30∼40대 여성전문 기술인력
13명으로 구성된 롯데건설의 고객서비스지원단인 엘에스피(LSP·Lady's Service Part)팀은
지난 4월 초 입주 시작 이후 날마다 현장에 나와 입주민들의 불편사항을 꼼꼼하게 해결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엘에스피는 주택업체들이 날로 까다로워지는 소비자들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 얼마나 애쓰는지
잘 보여준다. 입주를 앞둔 시점에서 실시하는 사전점검에서는 집의 구조적 문제에서부터 도색,
도배의 마감재처리에 이르기까지 흠집이 있는지 꼼꼼하게 살펴보고, 입주가 시작되면 한달 이상
현장에 사무소를 차려놓고 불편사항을 즉각 처리한다. 간단한 요구사항은 당일 처리하고 시간이
걸리는 일도 사흘내 처리를 목표로 삼고 있다. 새 입주자가 들어오면 사전에 집을 방문해 필요한
조처사항을 물어보고, 일이 끝난 뒤에는 반드시 전화를 걸어 제대로 일처리가 됐는지 확인한다.
그래도 미흡할 때에는 시공자를 데리고 현장을 방문해 재작업을 한다.
남명화(42) 팀장 등 팀원 13명은 요즘 일요일도 따로 없이 매일 아침 9시에 정상출근해 전화기
앞에 대기한다. 전체 156가구 중 아직 입주하지 않은 16∼17 가구의 불편사항이나 서비스 요구
사항을 해결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전화한통이라도 여성들이 상냥하게 받으니까 입주자들이
좋아한다”며 “입주자들의 불편사항을 들어주다보면 일은 힘들어도 보람을 느낀다”고 입을 모았다.
이밖에 현대산업개발, 엘지건설 등도 비정규적으로 주부평가단을 운영하고 있다.
모델하우스를 오픈하기 전에 이들을 투입해 주부들의 눈으로 건설 과정에서 간과한 부분을
개선하는 데 주력한다. 주방의 윗상단 수납공간을 남자키에 맞춘 경우가 많다든지 주방 동선이
불편하게 돼 있는 것들을 날카롭게 지적해 주부에게 편리한 공간으로 재탄생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처럼 주택업체들의 소비자를 위한 다양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업체 이익이
우선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
엘에스피의 한 관계자는 “입주민들의 처지에서 무리하지 않은 범위 안에서 요구사항을 들어주려고
하다가 회사쪽으로부터 `지나치게 할 필요가 뭐 있느냐'고 핀잔을 들을 때가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요즘 소비자의 안목이 너무 높아져 이제는 대충 짓고 대충 서비스해서는 안된다”며
“현재보다 소비자를 위한 서비스를 더욱 업그레이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한겨레신문 2001 / 06 / 06 김도형 기자aip209@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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