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털었어요(? !)
지난 일요일에 은행이 털렸답니다.
뉴스에서 혹 못보셨나요.
대단한 사건이었는데...
경기도 포천군 광릉 수목원 근처 조용한 동네.
갑자기 번쩍번쩍 광을 낸 차 한대가 꼬불꼬불
동네를 가로질러 나 있는 골목길을 조용히 올라갑니다.
한참을 올라가다 커다란 소나무와 은행나무들이 즐비한 통나무 집 앞에 멈춰섭니다.
은행 털이 초보자들.
광나는 차 모양 깨끗이 차려입은 5명이 주위를 두리번거립니다.
그때, 기다렸다는 듯 통나무 집 현관이 삐거덕 열리며
내부 공모자가 손짓을 합니다.
그러자 5명은 각자 나름대로 작업복을 갖춥니다.
제일 덩치 큰 남자는 아예 작업복 바지와 셔츠로 바꿔입고,
또 한 여자는 머리에 수건까지 감싸고 두 손을 장갑 속에 숨깁니다.
또 한 남자는 바지를 접어 양말 속에 넣더니 역시 지문이라도 남길까 장갑을 낍니다.
그 모양을 지켜보던 한 여자도 장갑을 낍니다.
그러나 나머지 한 명의 남자는 상황을 지켜보며 감시를 하려는 듯
입고 온 복장 그대로 목표 현장으로 접근해갑니다.
내부 공모자 역시 입가에 빙긋, 웃음을 머금으며 그들을 안내합니다.
몇 개의 돌계단을 올라가자 탁트인 언덕에 커다란 목표물 등장.
"저기 저 2그루하고 저 위쪽 1그루만 털면 돼.
누가 나무에 올라 가서 털어야 하는데 사람이 있어야지..."
완전히 작업복으로 갈아입었던 그 남자는 바로 저희 아버님.
큰 키로도 모자라 길다란 막대기 끝에 호미를 붙들어 매어
은행 나무에 걸고는 신나게 흔들어 대자
후두둑 후두둑,
구린내 풍기는 노란 은행이 떨어집니다.
수건까지 둘러 쓴 어머님은 저쪽 위 은행나무를 흔들어 보시지만,
어머님 힘에 흔들릴 은행나무가 아니라는 듯 꿋꿋이 서 있구요.
바지를 걷어올린 우리 아들 녀석은 장갑낀 손으로 열심히
할아버지가 떨어뜨리는 은행 주워담기에 정신이 없고...
장갑만 간신히 챙긴 저도 여기저기 숨어 있는 은행 줍느라 허리가 아플정도.
주위를 살피던 그 남자, 바로 우리 남편은 다친 다리 때문에 지켜만 보다
아버님이 힘에 겨워하자 결국 절룩이는 다리를 한 채 나무위로 올라 가더군요.
와우! 넘치는 힘?!!!
구석구석 사생결단 붙어있던 은행들을 잘도 찾아내 떨어뜨리는 모양이라니...
저도 나무타기는 제법 하는데 안타깝게도 나무위로는 감히 오를 생각도 못하고
코를 찌르는 냄새를 참아가며 열심히 수확에만 몰두했답니다.
내부 공모자는 누구냐구요?
아들들 미국에 보내고 혼자 계시는 시이모님.
그러니까 어머님의 언니죠.
은행을 못 털어 걱정하시길래 교회 갔다가 바로 포천으로내달려
기습적으로 은행털이 작전 수행 완료!
애프터로 어머님이랑 전 완전 무공해 고추밭을 완전히 뒤져 끝물고추를 사정없이 따냈죠.
시원한 솔바람 맞으며 파란색 빨간색 고추를 소쿠리 가득가득 따는 기분이 어떤지 아시나요?
송글송글 땀이 맺힌 얼굴도 어느새 시골 산속에서 불어오는 선뜻한 바람에 날리고
뉘엿뉘엿 해가 지는 산골에 어둠이 내리는 장면은
제 부족한 말솜씨로는 감히 옮길 수가 없네요.
마음 가득 풍성함이 차 오를때 이모님 얼굴도 이내 반가운 식구들의
어설픈 은행 털이 손길에 환한 미소가 피어 오릅니다.
맛있는 시골 밥상으로 배를 불리고 서울로 돌아오는 그 길은
칠흙같은 어둠이었지만 수고한 손길들은 한결같이 넉넉한 마음이었답니다.
가까운 곳에 주라 가족이 계시다면 고추라도 나누고 싶은 마음에
이렇게 은행털이 사건을 적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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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간의 외출 
가을의 신부에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