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마시는 이별주와 상봉주
남편과 마시는 이별주와 상봉주
___<남편 키우는 재미_타고북스>에서
술은 고운 얼굴과 미운 얼굴이라는 두 얼굴을 갖고 있다고 한다. 또한 역한 냄새와 향기로운 냄새라는 두 가지 냄새를 풍긴다고 한다. 하지만 내게 술은 고운 얼굴이고, 향기로운 냄새 쪽이다. 어린 시절 나는 마을 상점을 들락거리며 무던히도 아버지의 술심부름을 다녔었다. 술을 무척 좋아하셨던 아버지는 끼니마다 반주를 드셨는데, 새하얀 술잔에 술을 부을 때면 술 한 방울이라도 허투루 흐를세라 조심스레 부었고, 잔을 기울인 뒤에도 술 한 방울이라도 남을세라 깨끗이 잔을 비우셨다. 그 시절 나는 냄새만 맡아도 역한 술을 어쩌면 저렇게 맛나게 드실까 하고 신기해서 늘 동그란 눈을 슴벅이며 아버지를 지켜보았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평범한 시골 농사꾼인 아버지에게 술이란 곧 고된 하루 일을 버티게 해주는 힘이고, 마음의 아픔을 가셔주는 약이며, 슬하에 아들 없는 서운함을 달래주는 좋은 친구였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뒷날 나는 신통히도 아버지와 꼭 닮은 애주가 남편을 만났다. 남편은 가끔씩은 의식적으로 맑은 정신을 피해서 흐리멍덩 살아가는 것도 남자들의 멋이라는 말로 자신의 음주 습관을 변명하곤 한다. 그러면서도 과음해서 남의 문을 한참이나 두들겨 울지도 웃지도 못할 연극을 만들기도 하고, 폭음을 하고 난 이튿날에는 머리가 아프고 위가 쓰리다며 해장국 타령에 이어 약을 한 줌씩 집어먹으며 고생을 사서하기도 한다. 그런 남편과 자주 마주하면서 내 팔자에 왜 술이란 도깨비가 붙어 다닐까 하고 몸서리가 났다. 그런데 차츰 시간이 흐르자 술이란 물건이 우리 식구들을 정과 사랑으로 이어주고, 우리 가정에 작은 감동을 만들어주는 괴상야릇한 존재임을 실감하게 되었다.
날마다 저녁상에는 반주할 술이 있어야 하는 남편은, 언제부턴가 야금야금 나를 술친구로 만들어갔다. 나는 차츰 음식점도 포장마차도 아닌 가정식탁에서 단 둘이서 술을 주고 받는 재미를 알아갔다. 술잔을 부딪치며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 잔을 기울이는 미묘한 자극, 그 속에서 잔잔히 흐르는 가정의 평온함과 연인 같은 달콤함을 맛보면서 집안에 부부만의 그윽한 정서가 가득 찰 수 있음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그래서 인지 지금 나는 여러 가지 술 빚기를 무척 즐긴다. 오미자, 알로에, 인삼, 포도를 담가 술을 빚고, 한 단지 다 마시면 또 한 단지를 이어대고 있다. 어쩌다 남편이 술 생각이 없다고 밥부터 찾는 날이면 왠지 마음이 불안해지며 다만 반 잔이라도 권해야 시름이 놓이니, 참, 어느새 나도 술꾼 남편을 닮아버린 모양이다.
지난 번 오랜만에 아들과 함께 세 식구가 오붓이 모여 앉은 내 생일상에는 맥주며 소주며 와인까지 여러 가지 술이 올라 왔다. 술이 몇 순배 돌자 흥이 오른 남편은 우리를 노래방으로 끌고 갔다. 보기 드문 일가족의 행차에 노래방 주인은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너무 보기 좋다며 박수까지 보냈다.
그날 저녁, 우리 셋은 망가진 몸으로 트위스트를 신나게 추었고, 번쩍이는 불빛 아래서 어깨동무를 하고 빙글빙글 돌기도 했다. 그 날의‘술 선물’은 장미꽃이나 금목걸이를 선물로 받았을 때보다 퍽 감동적이어서 그후 나는 며칠 동안 흥분으로 마음이 두근거렸고, 우리 식구들에게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영원히 기억에 남게 되었다.
나는 술의 두 얼굴 가운데 고운 얼굴을 택한 뒤 술로 가정의 신선한 아름다움을 만드는 법을 잊지 않고 있다. 그리하여 이제 남편이 출장을 떠날 때면 ‘이별주’, 남편이 돌아오면 또 영락없이 반가운‘상봉주’, 밖에 있는 아들이 그리울 때면 ‘사념(思念)주’ 그리고 남편과 티격태격 얼굴을 붉히고 난 뒤 에는‘화해주’를 마시는 것이 하나의 습관이 되어버렸다.
나는 술의 맛을 마음으로 음미한다. 그래서 내 가정에서 마시는 술은 언제나 달고 향기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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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웠습니다. 사랑했습니다. 
